글: 조은애

거창하지도 않다. 한낮에는 햇빛이 들어서 식물과 내가 광합성을 하고 이불을 말린다. 두꺼운 벽이 있어 여름과 겨울이 고통스럽지 않고 층간 소음에 잠에서 깨지 않는다. 월세가 오를 때는 집주인에게 타당한 이유를 들을 수 있고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협상할 수 있다. 그 즉시 쫓겨나는 것이 아니라.

베를린의 어느 날이었다. 날씨가 따뜻해져 겨우내 덥던 두꺼운 이불을 코인 세탁소에 가서 세탁했다. 집이랑 거리가 있는 세탁소이기도 했지만, 집에서는 절대 이불을 말릴 수 없기 때문에 완벽한 건조는 필수다. 새 이불을 사는 가격과 비슷하게 동전들을 넣어 세탁하고, 탈수하고 건조를 하는 순서다. 그 큰 이불이 들어가는 세탁기는 듬직하다. 많은 동전을 넣어도 불안하지 않다. 1시간 30분이 흘렀나, 다음 순서는 탈수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이불에 옷이 젖지만, 탈수기에 넣는다. 시작을 누르는 순간 탈수기는 폭발! 하는 듯한 소리를 내고 사람들의 시선은 그 옆에 있는 낯선 나에게 머무른다. 비싸게 주고 산 가볍고 따뜻한 나의 겨울 이불은 이렇게 허무하게 안녕을 외친다. 고장 난 기곗값을 변상해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나 얼마나 하나 고민하며 집으로 들어오자 덜 마른 빨래 냄새가 온 집에 스며들어 있다.

합정역 7번 출구의 집에서는 두 명 또는 세 명이 같이 살았는데 거실에 있던 빨래 걸이는 접힌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 집은 창문은 있지만 양옆으로 집들이 막혀있어서 바람도 햇빛도 통하지 않았다. 나는 몰랐지만 나를 만났던 사람들은 언제나 ‘꿉꿉한 냄새’로 나를 기억했던 것은 아닌가. 그 냄새를 지우려고 온갖 식물이라는 식물을 사다가 집에서 키워댔지만, 그대로 있어 주면 그거야말로 고마운 정도였다. 바람도 햇빛도 통하지 않는 1.5층 집에서 오들오들 떨어댄 식물들에게 미안함을 전한다.

그렇다. 나는 식물꾼으로써 독일에 왔다. 가볍고 튼튼한 독일 토분에 진작부터 빠져있었고, 인터넷에 독일어로 또는 영어로 검색해보는 독일 창가, 독일 제라늄, 독일 토분 등의 이미지에 매료되어 있었다. 나는 그 발코니를, 그 햇빛을 기대하며 독일에 왔다. 독일 토분을 잔뜩 사서 거기에 제라늄을 키우고 겨울에는 제라늄을 위한 작은 집까지 만들어줄 거라는 욕망덩어리와 함께. 그러기 위해 합정역 7번 출구의 그 수 많은 초록이들과 토분들은 슬프지만 떠나보내야만 했다. 대신 더 밝고 아름다운 미래를 그리며!

나는 베를린에서 한국식으로 3층인 행복한 정남향에 살고 있다. 3년 하고 몇 달 전 이 집을 보러 왔을 때,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간다던 세입자는 이런 말을 남겼다. ‘이 집 여름에는 햇빛이 너무 많이 들어서 너무 밝아요.’ 여름의 끝자락 오후였는데, 아마도 나는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오전 열 한시나 낮 한 시에 왔어야 했나?

정남향이지만 집 앞에 건물이 있어 햇빛이 드는 시간이 짧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입주하고 며칠 뒤 알게 됐다. 입주 날부터 며칠간 날씨가 흐려서 집이 어둡나 했는데, 아니었다. 이 집은 여름에는 높은 해 덕분에 1시간 정도의 직사광선이 겨울에는 15분이 들까 말까 하는 집이었다. 문제는 토분이 여전히 내 마음에 안착해 있다는 점이었다. 독일 토분의 고향에 왔으니 다양한 독일 토분을 간직하고 싶고, 저 가까이 이탈리아 토분까지 한 번 들어나 보고 싶다. 그렇게 토분을 그나마 키우기 쉽다는 식물들의 집으로 하나둘 만들어준다. 얼마 후, 습기가 충분해야 하는 고사리류는 전멸, 햇빛이 있어야 하는 아름다운 꽃을 가진 식물들도 전멸. 나에게는 이제 몬스테라, 스킨답서스 그리고 스파트 필름 이 친구들이 남았다.

이 집의 장점은 이렇다. 모든 가구와 부엌이 갖춰져 있어서 처음 이사 올 때 아무것도 사지 않아도 된다. 한국 사람으로써는 믿어지지 않지만, 독일의 많은 집은 싱크대, 가스레인지 등이 없는 상태로 월세를 내주곤 하며, 세입자들은 부엌을 다 사거나 그전에 샀던 부엌을 다 이동 시켜 설치해야 한다. 심지어 화장실에는 수도꼭지조차 없는 경우도 있다. 어쨌든 이사 비용이 적다는 장점과 함께, 이 집은 조용하고 안전한(?) 동네에 있고, 건물에 사는 다른 사람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본 적은 없다.

그래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아. 그래도 나에게는 몬스테라, 스킨답서스, 스파트 필름이 있고 이불은 작은 걸 사면 되니까. 빨래는 탈수를 더 열심히 해서 금방 마르게 하면 되니까. 햇빛은 바깥에서 충분히 쐬면 되고 겨울에는 비타민D를 먹으면 되니까.

그러나 나는 3년 만에 나만의 온전한 집을 찾아 떠나게 되었다.

LED 빛이라도 잔뜩 쐬렴, 초록이들아

<2편에서 이어집니다>


1개의 댓글

White Label SEO · 2020년 1월 29일 3:26 오후

Awesome post! Keep up the great wor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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