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당 공동대표인 아날레나 베르보크와 로베르트 하베크는 지난해 6월 독일 주요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에 기고문을 보냈다. 집권당인 기민당의 창당 75주년을 축하하기 위함이었다. 베르보크와 하베크는 기고문에서 ‘안정과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기민당의 국가운영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 기민당은 1945년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직후 창당해 독일 재건 및 새로운 체제의 형성에 기여했다. 초대 총리인 콘라트 아데나워를 시작으로 기민당 소속 총리가 재직한 기간을 합치면 40년이 넘는다.

물론 이 기고문이 축하 메시지만을 담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두 젊은 공동대표는 녹색당이 어느덧 안정적인 정권 운영과 협치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고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기민당처럼 녹색당도 집권당으로서 발돋움할 준비를 마쳤다는 뜻이다. 오는 9월 연방의회 선거에서 기민당의 집권 연장을 위협할 강력한 경쟁자는 사회민주당(사민당)이 아니라 녹색당이다. 6월16~23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녹색당은 지지율 22%로 기민당에 이어 2위에 올랐다. 총리 선호 여론조사에서도 녹색당의 베르보크 후보가 23%로 기민당의 아르민 라셰트(26%)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기민당과 녹색당은 9월 총선 이후 예상되는 가장 유력한 연정 파트너이기도 하다. 기민당이 1위를 기록하더라도 단독으로 과반 의석을 차지하기는 어려우리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녹색당을 연정 파트너로 고려할 수밖에 없다. 만약 녹색당이 1위를 차지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이 경우 급진적인 진보정당으로 여겨져온 녹색당과 보수정당인 기민당이 독일 정부를 이끌게 된다. 독일 사회와 두 정당이 그동안 여러 가지 변화를 거쳐왔기에 가능한 일이다. 특히 녹색당은 당이 추구하는 가치의 스펙트럼을 점진적으로 넓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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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인 지면을 통해 진행되는 독일 녹색당 역사에 대한 연재 기사 1호를 녹색당이 ‘기민당’에 보낸 편지로 시작했다. 어떻게 글을 시작할지 결정하는 것은 늘 어려운 일이다. 성공 여부나 적절함과는 상관 없이, 글 전체를 포괄할 수 있는 사건이나, 발언 등으로 글을 시작하려고 하는 것이 개인적 전략이다. 그리고 나에게 독일 녹색당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은 기민당과 가장 먼 곳에서 기민당의 위치를 향해 움직여온 것으로 보인다. 물론 기민당과 독일 사회 전체가 어느 정도는 녹색당 방향으로 움직였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이야기다.

“녹색당”이라는 이름에서 조금 더 급진적인 변화의 희망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독일 녹색당의 길은 일종의 배신의 길일 수 있겠다. 하지만 독일 녹색당에 대한 평가를 위해서는 지나간 40년 동안 녹색당과 독일 사회가 겪은 변화를 이해할 필요가 있겠다.

물론 5회 연재를 통해 모든 것을 조망할 수는 없겠지만, 세 사람이 함께 하는 작업을 통해 독일 녹색당을 이해할 수 있는 시야가 확장되기를 기대해본다.

기사 읽기: 지금 독일 정치의 중심에는 녹색당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