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1에 이어집니다.

S: 개신교회를 보면 마르틴 루터는 동물의 친구로 여겨진다. 개신교회에서는 동물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P: 전체적으로 보아 개신교회는 동물을 완전히 대상으로서만 보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여하간 그것은 공식적인 교회 예를 들면 루터파와는 구별되어야 한다. 루터 본인에게서 나온 동물에 관한 두 가지 말이 있다. 하나는 그가 젊었을 때 잘 알려진 것처럼 이탈리아에서 참새를 사냥하는 것에 대단히 큰 반대를 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의 유명한 식탁 담화에서 나왔던 이야기로 매우 논쟁적이다. 한 남자가 루터에게 와서 개도 천국에 갈 수 있냐고 물었다. 루터가 대답하기를 당연하다. 신은 새로운 황금 천국을 만들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강아지나 큰 개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루터에 관해 깊이 연구한 사람은 이러한 말들이 동물 친화적인 발언이 아니라, 일종의 조롱이였다는 것을 알고 있다.

S: 칼뱅의 경우는 어떠한가?

P: 프로테스탄티즘은 전반적으로 자연에 대한 지배계약으로 특징 지어질 수 있다. 칼뱅주의와 함께 자본주의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와 함께 자연이 인간의 이용과 편리를 위해 존재한다는 상상력이 등장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고 고대 그리스 로마부터 이미 알고 있었던 상상력이다. 고대의 스토아주의자들이 그랬다.

S: 이슬람에 대해서도 묻고 싶다. 이슬람 또한 유일신교에 속한다. 동물에 대한 이슬람교도의 태도는 어떠한가?

P: 기독교와 비교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코란에 동물은 먹을 수 있는 것과 수송수단이 되는 것으로 고정되어 있다. 물론 모하메드에게 나온 동물 친화적인 문장이 몇 가지 있다. 예수와 다르게 모하메드는 자주 동물에 대해 친근한 발언을 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기독교와 크게 다르지 않다.

S: 불교나 힌두교는 유일신 종교와 다르게 동물을 대한다. 환생과 윤회의 가르침이 여기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고 있는가?

P:  사막의 종교는 원시림의 종교와는 다른 동물에 대한 태도를 만들어냈다. 아주 습하고 열매가 많은 인도에서는 완전히 다른 동물과의 관계가 형성되었다.

우리가 기독교에 대해 알고 있는 많은 문제만큼 고대힌두교에도 많은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우리가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영혼의 윤회는 결정적이다. 이 사상은 약 기원전 600년경 지중해 연안과 인도에서 동시적으로 발생했다. 우리는 왜 그런 일이 있었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지중해 공간에서 이 사상은 자리를 잡지 못했다. 플라톤은 윤회를 믿은 마지막 주요 철학자다. 하지만 아시아에서 이 사상은 자리를 잡았다. 인도에서부터 중국으로 그리고 히말라야로.

환생을 믿는 사람은 그것을 믿지 않는 사람과는 완전히 다른 동물에 대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모든 동물에게는 말하지만, 이전에는 인간이었던 누군가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 이것은 동물과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

S: 이것과 동물을 먹지 말라는 계명이 관계가 있는가?

P: 그렇다. 힌두교도뿐만 아니라 불교도들도 이 계명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계명이 예외인 지역도 있다. 많은 힌두교도와 불교도가 고기를 먹는다. 이러한 예외를 분명히 할 수 있는 분명한 예가 있다. 불교도가 히말라야로 확장될 때, 그곳에는 야크를 사육해서 생활하는 문화가 있었다. 해발 3000, 4000m 높이의 지역에서는 겨울에 야크 말고는 먹을 것이 정말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예외가 도입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예외는 큰 소동과 함께 도입되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불교 세계에서 육식은 더 적은 양을 차지한다. 우리는 지금 문화사에 관한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가 지금 현실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누군가 상하이에서 식당을 찾는다면, 당연히 이곳에서처럼 고기를 먹을 수 있다. 상하이에도 맥도날드는 있다.

S: 힌두교나 힌두교도들이 피조물에 대한 공감으로부터 육식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그럼 무슨 이유 때문인가?

P: 여기에는 서로 연결된 두 가지 지점이 있다. 윤회 사상은 모든 인간이 다음 생에는 더 높은 존재의 형태로 태어나고 최종적으로는 언젠가 다시 태어나지 않고 이것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노력할 것을 전제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매우 윤리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매우 윤리적인 삶이란 계속해서 모든 형태의 과도한 향락을 포기하는 삶이다. 그리고 육식은 그러한 과도한 불필요한 향락이다. 가능한 모든 것을 포기할 정도의 금욕적 삶이 문제가 된다면, 육식은 이중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 첫 번째는 환생 때문이고, 두 번째는 폭식과 비윤리적인 향락이다.

S: 우리가 이미 말한 것처럼 인간은 자신의 문화사적 발전 속에서 계속해서 동물로부터 소외되고 있다. 자신의 지적인 힘을 통해 인간은 곧 자신의 특별한 위치를 취했다. 특히 유일신교에서 인간은 모든 것의 기준이다. 하지만 인간은 언제부터인가 자신의 이성을 통해 자연과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관해 탐구하기 시작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이 첫 번째로 이러한 행위를 하기 시작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자연과 인간을 동물과의 관계에 있어 어떻게 보았는가?

P: 거대한 전환이 헤라클레이토스에게서 왔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신적인 로고스가 있고, 그것은 이 세계의 저편에서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이 세계를 비추고, 특히 내가 충분히 이성적이고 영리하다면, 인간의 영혼을 밝게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인간은 무엇인가 완전히 유일한 존재가 되었다. 인간이 세계의 로고스, 세계 이성에 참여하고 있으므로 인간이 무엇인가 특별한 존재라는 말하자면 로고스 철학, 혹은 로고스 종교, 혹은 로고스 신앙의 일종을 통해서 인간은 유일한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훗날 기독교의 영혼 교리로 전유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전적으로 인간적인 영혼이라는 우리의 상상을 규정했다. 인간의 영혼은 처음부터 완전히 다른 어떤 것이고 변하지 않는다는, 그리고 동물과는 그 어떤 것도 같지 않다는 그런 상상력을 갖게 되었다. 왜냐하면,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가 말한 것처럼 “동물은 이성에 참여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동물의 영혼은 불멸의 것과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S: 하지만 이성의 발견과 함께 학문이 자연을 관찰하는 영역에 도달하기도 했다.

P: 그렇다. 이것은 인간이 자연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면서 16/17세기에 시작되었다. 자연을 분류하는 일은 이미 고대에 아리스토텔레스가 한번 했던 일이다.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구멍으로 남아 있다고 바로크 시대에 와서야 천천히 다시 시작되었다.

계몽주의가 시작될 때 중요한 스웨덴의 자연과학자 린네(Carl von Linné)가 자연에 관한 목록을 작성했고, 이 목록에 맞춰서 모든 것을 체계화했다. 여기에서 이미 아리스토텔레스가 물었던 질문이 하여지게 된다. 비록 인간이 이처럼 놀라운 로고스와 이성의 혼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인간은 원숭이와 매우 유사해 보인다는 질문이 던져지게 되었다. 이것이 매우 이상했기 때문에 인간은 간절하게 차이의 표식을 찾게 되었다. 한편으로 인간은 이성의 혼을 통해 동물 세계와는 완전히 구분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동물과 믿을 수 없을 만큼 유사하다.

S: 계몽주의에도 불구하고 18세기의 많은 철학자와 자연학자들은 기독교 신학에 영향을 받았다. 기독교 신학에서 모든 발전은 신의 영리한 창조계획에 연유한다. 인간의 의식은 신적 창조의 결정체이다. 그런데도 계몽과 함께 동물에 대한 인간의 태도가 변했다. 학대당하는 창조물에 대한 동정의 감각이 인간의 머릿속에 되돌아왔다. 어느 정도 이것이 영향을 주었는가?

P: 그렇다.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동물이 얼마나 사물화되었는지를 더욱 비판적으로 말할 수 있다. 그런데도 “함께 창조된 창조물”과 같은 표현이 종교적 맥락에 빚을 지고 있다. 그러니까 반국교적 프로테스탄티즘의 빚을 지고 있다. 우리는 이제 17세기에 관해 이야기할 것이다.

17세기에 청교도 같은 프로테스탄티즘의 분파가, 그 뒤로 퀘이커, 경건주의가 동물과 다른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신학적 근거가 있다. 이들은 아담의 원죄가 수고스러운 노동과 학대를 인간에게 가져왔을 뿐 아니라, 부당하게도 동물도 함께 고통에 빠지게 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동물 또한 죽어야만 했고, 고통 속에서 분만해야만 했다. 그러니까 인간이 낙원에서 추방당한 뒤 인간에게 벌로 내려진 모든 것들을 동물 또한 겪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동물을 운명공동체 일부로 느끼게 되었다.

모두가 원죄에 해당한다. 그리고 그것이 인간과 동물을 다시 가깝게 했다. 그리고 이러한 맥락에서 함께 창조된 창조물이라는, 그러니까 우리는 지상에서 공동의 운명이고 이곳으로부터 구원을 받아야만 한다는 상상이 생겨났다.

S: 그리고 이러한 생각과 함께 결국 동물 보호가 생겨났다.

P: 동물보호는 정말로 경건주의와 청교도로부터 생겨났다. 이것은 영국에서 처음으로 운동의 형태가 되었다. 하지만 19세기에 독일에서도 생겨난다. 동물보호협회는 정확히 이러한 경건주의의 정신으로부터 나타났다. 함께 창조된 창조물로서 동물은 우리의 보호를 받아야만 하고 동물의 고통은 경감되어야만 한다. 우리는 동물에 대해 지나치게 야만적인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이와 함께 19세기에 동물보호가 시작되었다.

S: 20세기에 동물보호는 점점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계속해서 더 많은 동물보호협회가 생기고 있고, 그뿐만 아니라 더는 동물보호가 아닌, 동물의 권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동물의 대규모 사육, 동물실험, 모피 동물농장, 동물원, 사냥은 동물권리 운동의 관점에서 본다면 오늘날 없어져야 할 것들이다. 동물의 권리 운동가들은 어떤 논증을 하는가?

P: 동물의 권리 운동가들은 오늘날 부분적으로는 18세기 말과 19세기에 발견할 수 있는 논증을 펼친다. 현재 결정적인 질문은 동물의 권리가 동물이 우리처럼 생각할 수 있는가와 관련된 것인지, 혹은 동물이 우리처럼 어떤 것들을 느낄 수 있는지와 관련된 것인지에 관한 질문이다.

동물의 권리에 관한 생각은 여기에 기초해있다. 동물의 권리에 관한 생각은 특히 피터 싱어의 책 “동물 해방(Animal Liberation)”을 통해 생생한 모습을 갖게 되었다. 우리는 이제 1970년대에 와 있다. 피터 싱어의 핵심적 생각은 고통을 인지할 수 있고 일정 수준의 의식을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윤리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신생아보다 더 많은 의식을 하고 있고 어쩌면 고통을 더 잘 느낄지도 모르는 침팬지가 윤리에 포함되지 않고 신생아는 포함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S: 당신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무엇이 현대 동물윤리의 기준이 되는가?

P: 전통적인 동물권에 관한 철학에는 동물 존중에 관한 두 가지 논증이 있다. 하나는 동물이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과 매우 유사한 의식을 하고 있는가이다.

두 논증 모두 각자의 위험요소를 가지고 있다. ‘만약 내가 지금 동물을 사육해야 한다면, 고통을 느끼지 않는 닭을 키우겠다. 만약 닭이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면 양계장도 아무 문제 없다.’ 내 생각에 이것은 동물권의 옹호자들이 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첫 번째 논증(고통의 감각)의 약점을 보여준다.

인간과의 유사성이 두 번째 논증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침팬지의 경우 동물 윤리에 속하지만, 닭의 경우는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인간이 기준이 된다. 우리는 또다시 완전히 인간 중심적인 기준을 적용한 것이다. 이것은 문제가 있다. 나는 무지의 윤리를 지지한다. 나는 벌목꾼과 같은 확신을 하고 누가 얼마나 의식을 하고 있는지, 얼마나 고통을 느끼는지 주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복잡한 형태의 고통 인식과 의식을 추측해볼 수 있는 모든 곳에서 매우 매우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하며, 우리가 믿고 있는 것을 우리 자신 혹은 동물에게 정말로 부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S: 이런 종류의 현대 동물윤리를 위한 논증에 대해 인간의 종-이기주의가 반박하고 있고, 이에 반해 동물을 위한 로비는 존재하지 않는다. 예측할 수 있는 시기 내에 사회정치적으로 현대의 동물윤리를 정착시키는 것이 얼마나 가능하다고 보는가?

P: 나는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나는 인간의 종-이기주의를 믿지 않는다. 나는 이걸 매우 이상한 편견이라고 평가한다. 내 생각에 종-이기주의는 영국의 동물학자이자 대중적인 학술저술가인 리처드 도킨스로부터 시작된 것 같다. 종-이기주의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그런 것이 있었다면 시리아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의 종-이기주의는 없다. 단지 나의 지평선 내부의 생명체가 외부의 생명체보다 중요하게 여겨지는 지평이 있을 뿐이다.

많은 사람은 자신의 셰퍼드를 낯선 사람들보다 사랑한다. 이것은 종에 의해 경계가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우리의 공동 세계 속에서 우리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무엇을 위해 우리가 책임감을 느끼는가? 우리가 책임감을 느끼는 곳에서 우리는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인다. 무엇인가 저 밖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것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내 생각에 이것이 경계이다.

경계가 동물과 인간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물어져야 하는 것은 우리가 어느 범위까지 우리의 공감을 사회적으로 동물에게까지 강하게 확대할 수 있는가이다. 지난 200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우리는 우리의 공감 범위가 꾸준히 확장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백인 남성들은 그러니까 노예가 잘못되었다는 것 정도까지 자신들의 공감 영역을 확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공감을 여성에게 얼마나, 얼마나 힘든 일들이 일어났었는지, 무엇이 천년의 투쟁을 경험하게 했는지까지 확장했다.

S: 하지만 그것을 말하기 위해서 압력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P: 그렇긴 하지만 그들이 그것을 막을만한 권력을 갖고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공감의 세력이 더 컸다. 압력은 항상 강해져 왔다. 그리고 동물도 동일하다. 여성운동이 자리를 잡은 것은 일부 여성이 노력했기 때문이 아니다. 여성운동이 자리 잡은 것은 남성 중심의 사회가 더는 자유주의적 윤리적 사회의 상상과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생각에 우리가 오늘날 동물에게 하는 행위들은 도덕적, 자유주의적, 사회적 시각에서 그리고 높은 감수성의 측면에서 더는 우리의 상상과 부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우리가 계속해서 나아갈 것이라는 점에 있어서 낙관적이다.  

(https://www.deutschlandfunk.de/richard-david-precht-ueber-den-umgang-mit-tieren.886.de.html?dram:article_id=368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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