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의 유명한 쇼핑가인 하케셔 마크트(Hackescher Markt) 주변을 돌아다니다 보면 한 개성 넘치는 쥬얼리 샵을 만나게 된다. 하케셔 마크트 인근 소피엔슈트라세(Sophienstrasse) 한켠의 간판 없는 검은색 매장은 지나가는 행인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곳은 슈바르츠골드 베를린(SCHWARZGOLDberlin)로, 옥사나 테스만(Oxana Tessmann)이 작년에 오픈한 쥬얼리 스튜디오다. 그녀가 디자인한 개성이 뚜렷한 쥬얼리는 베를린을 넘어 미국에서도 이름을 알리고 있다.
옥사나 테스만과 함께 그녀의 베를린에서의 삶과 쥬얼리 디자이너로서의 작품관에 관해 인터뷰를 가졌다.
어떻게, 그리고 언제 쥬얼리 디자인을 시작하게 됐나요?
: 하하, 흥미로운 이야기에요. 저는 사실 러시아에서 교육학을 전공했어요. 그런데 저는 어릴 때부터 항상 쥬얼리를 좋아했어요. 어디서든 돈이 생기면 제 취향에 맞는 쥬얼리를 사곤 했죠. 그러다 8년 전에 이베이를 통해 마음에 드는 브로치를 하나 사게 됐어요. 브로치의 그림은 정말 마음에 들었지만 뭔가 부족한 거에요. 브로치 테두리에 불규칙적으로 박혀있는 보석을 좀 더 고르게 고쳐서 반지로 만들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구글에 어떻게 하면 바꿀 수 있을지 검색해봤어요.
완성한 반지를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셨나요? 반응이 어땠는지 궁금해요.
: 네, 어느 마켓에 그냥 시험 삼아서 가지고 나가봤어요. 그런데 누가 제가 만든 반지가 마음에 든다며 사고 싶다고 하는 거예요. 그분에게는 사이즈가 조금 안 맞아서 반지 사이즈를 바꿀 수 있냐고 물어봤어요. 제가 알 수가 있나요? 하하, 그래서 또 찾아봤죠. 어떻게 하면 반지 사이즈를 바꿀 수 있을지. 그런데 제가 만든 반지의 형식은 사이즈를 바꿀 수 없어서 판매는 못 했고, 여전히 제가 가지고 있어요.
그럼 그 뒤에 반지 사이즈 바꾸는 방법도 배우셨어요?
: 하하, 네. 8년 전에 일주일에 한 번씩 쥬얼리를 만드는 수업을 들었어요. 그 수업을 통해서 많은 디자이너, 아티스트들을 알게 됐어요. 수업은 몇 달이면 끝나는데 저는 1년 동안 반복해서 들었어요. 그때가 참 즐겁기도 했는데 힘들기도 했어요. 당시 저는 풀 타임으로 무역회사에서 일하고 있었거든요. 아이도 키워야 됐고요. 상상되시나요?
상상이 되네요. 사람들은 베를린이 아티스트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라고 하는데, 테스만 씨도 역시 그렇네요. 러시아에서 어떻게 베를린으로 오게 되셨나요?
: 우선 말하자면, 저는 베를린에 이렇게 오래 살 게 될지 몰랐어요. 제 모국어는 러시아어지만 두 번째로 편하게 쓴 언어는 독일어에요. 러시아 대학에서 교육학을 졸업하고 나니 독일어를 좀 더 배우고 싶었어요. 베를린은 러시아와 멀지도 않고 비행기 직항이 있어서 그렇게 멀지 않게 느꼈어요. 그렇게 훔볼트 대학에 사회학 학사 과정에 등록했죠. 그때만 해도 제가 쥬얼리 디자이너가 될 거라고는, 베를린에 20년이나 살 게 될지는 생각도 못 했어요.
20년이나 살게 된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 처음에 베를린 와서는 여러 가지 일들을 했어요. 식당에서 서빙도 하고, 독일 러시아 무역 회사에서도 11년이나 일했어요. 그러다 남편을 알게 됐고 결혼을 하게 됐죠. 남편이 독일인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독일에 정착하게 됐어요.
아티스트로써 베를린에서 살아가는 장점이 있을까요?
: 쥬얼리 수업에서 많은 사람을 알게 됐어요. 아티스트 그리고 디자이너들. 그리고 베를린에는 기회가 더 많다고 생각해요. 아, 한 가지 예를 들면 바로 이해하실 거에요. 지난주에 러시아에서 가족들이 왔는데 여행용 가방을 사야 하는 상황이 있었어요. 같이 어느 백화점에 갔는데 그곳에 있던 캐리어에 이렇게 쓰여 있는 거예요. ‘베를린에서 찾지 못한다면, 전 세계 어디에서도 못 찾을 거에요!’ 베를린은 그만큼 특별한 곳이에요.
특별한 베를린 안에서도 이곳 슈바르츠 골드 베를린은 더 특별한 것 같아요. 쥬얼리를 판매하는 곳인데 마치 갤러리 같아요. 여기 있는 물건들을 좀 소개해주시겠어요?
: 고마워요. 벽 양쪽에 있는 작품들은 미국 작가의 작품이에요. 이 작가의 그림이 들어간 쥬얼리를 만들어서 그 작가에게 주고, 저는 작품 두 개를 받았어요. 옛날처럼 물물교환을 한거죠. 그리고 여기 잔들은 세계 여러 곳에서 구매했어요. 장식품들은 제가 지금까지 모았던 것들을 집에서 가지고 온 거고요. 가끔은 제 취향에 맞거나 이 스튜디오에 어울린다 싶으면 인터넷으로도 구입하곤 해요. 관심이 있으면 언제든지 무언가를 찾을 수 있는 것 같아요.
목걸이를 걸어놓은 까마귀가 시선을 끌어요.
: 이 까마귀는 영국의 한 작가의 작품이에요. 처음에는 두 개만 가지고 있었는데 스튜디오를 오픈하면서 잘 어울린다 생각해서 저기 큰 작품도 샀어요. 자세히 보면 오래된 천으로 새의 깃털이 장식되어 있고 정말 멋져요. 많은 분들이 까마귀에 관심을 보이셔서 작가에게 다시 연락해서 우리 매장에서 판매하는 게 어떨까 얘기해보려고요.
어떻게 지금과 같은 취향을 갖게되었나요?
: 글쎄요, 이 공간을 꾸미는 데에는 지금 사는 집 인테리어 할 때 샀던 잡지들이 큰 도움이 됐어요. 건축 잡지를 많이 봤는데 멋진 디자인뿐만 아니라 좋은 사진들도 많았어요. 베를린과 이 거리가 변화하는 모습들도 영감을 주어요. 그 변화를 기억하는 것은 참 특별한 일이에요. 예전의 베를린 모습이 담긴 책이 발간되면 꼭 사요. 공간에 대한 관심이 큰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한 가지만 고집하지는 않아요. 제 마음에 들고 제 시선을 끄는 것, 그에 따라 움직이려고 해요. 한 사람이 꼭 하나의 스타일만 고집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러다 보니 제 취향은 제가 좋아하는 것이지 무엇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어요.
쥬얼리 디자인의 영감은 어디에서 얻으세요?
: 예를 들어 침실에 오래된 연꽃 그림이 있어요. 자고 일어날 때마다 항상 그 연꽃 그림을 봤어요. 그러다 어느 날 연꽃 형태의 반지를 만들고 싶은 거에요. 그렇게 완성된 반지가 이 반지에요. 이렇게 저는 일상생활 속에서 언제든지 영감을 얻어요.
또는 다른 아티스트의 작품을 보면 제가 먼저 협업을 제안하기도 해요.
때로는 원석을 보면 아이디어가 떠올라요. 반짝이고 아름다운 원석을 보면 만들고 싶은 쥬얼리가 떠오른달까요. 최근에는 오팔이 그랬어요.
디자인 영감은 어떻게 작업으로 옮기세요?
: 우선은 디자인 작업을 시작해요. 그뒤엔 디자인을 세공사에게 드리죠. 하나의 쥬얼리가 만들어지는 데 걸리는 시간은 종류에 따라 천차만별이에요. 그 시간 동안 조금 더 나은 디자인이 떠오르기도 하고, 그럴 때는 다시 다 녹이고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하나? 하는 고민이 떠오르기도 하죠. 그리고 언제나 어려운 단계가 기다리고 있어요.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음에 들까, 하는 어려움이요.
스튜디오를 오픈한 지 1년 정도 됐는데, 어떤 분들이 가장 관심을 보이나요?
: 놀랍게도 미국 분들이에요. 제가 앞서 말씀드린 미국 작가를 통해 미국에 알려지다보니 그 작가의 작품으로 쥬얼리를 만들어달라는 분들도 많고, 여행 오신 분들도 많이 구매하세요. 그리고 독일 분들, 가끔은 아시아에서 오신 분들도 오셔서 관심을 보이시곤 해요.
이 인터뷰로 많은 한국 분들에게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마지막 질문으로, 쥬얼리 아티스트로써 앞으로 바라는 점이 있으신가요?
: 많은 수공업자가 계속 자신의 일을 이어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 자신은 디자이너이지만, 장인의 기술을 가진 사람이 의상 디자인과 같이 컴퓨터로 하는 직종으로 옮기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그게 너무 안타까워요. 그리고 지역에서 만들어지는 제품의 오리지널리티가 유지되었으면 좋겠어요. 베를린에서 만들어지던 제품이 생산 비용 때문에 임금이 낮은 나라에서 대량 생산되는 것이 반갑지만은 않아요. 프랜차이즈가 아닌 소상공인이 좀 더 잘 살아나갈 수 있는 것, 그것이 제가 바라는 점이에요.
한 시간여의 인터뷰 내내 내가 던진 질문에 진지하고 성실하게 대답해 준 테스만 씨. 그녀가 만드는 쥬얼리에는 믿을 수 있을 만한 그녀의 취향이 언제나 녹아들어 있다. 슈바르츠 골드 스튜디오도 단지 제품을 판매하는 상점이 아니라 오랫동안 만들어진 그녀의 취향이 더해져 마치 갤러리처럼 운영되고 있다. 그녀는 쥬얼리 아티스트로써 그리고 베를린에 사는 한 명의 베를리너로서 미래에 대한 기대감과 두터운 책임감을 갖고 있다고 느껴졌다. 그녀의 바람대로 소상공인이 그리고 장인이 더 인정받고 사람들도 그 가치를 알게 되기를 소망해본다.
슈바르츠 골드 베를린에서는 이미 제작된 쥬얼리뿐만 아니라 주문 제작도 가능하다. 자신에게 주는 특별한 선물이 필요하다면 연락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원고 작성: https://blog.naver.com/berlin-tip/221590116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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