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11월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그로부터 1년 뒤인 1990년 10월3일, 옛 동독의 여러 주(州)들이 서독 연방정부에 가입하는 형태로 독일은 통일되었다. 한국인이 ‘독일 통일’에서 연상하는 것은 아무래도 시민들이 베를린 장벽 위에 올라 환호하며 망치로 장벽을 부수고, 이렇게 무너진 장벽 사이로 옛 동독 주민들이 서독 영토로 들어오는 장면일 것이다. 그러나 독일 통일은 모두가 염원하던 것이었을까?

장벽이 무너진 직후 동독은 헌법에서 ‘공산당의 정권 독점’ 조항을 삭제한다(공산당의 영구 집권 부정). 이로써 그동안 사회주의통일당의 위성정당으로 존재해온 기민당, 자민당, 농민당 등이 자체적 노선을 추구할 수 있게 되었다. 동독에 녹색당이 창당된 것도 이 시기다.

옛 동독에서도 1980년대 초반부터 반핵과 평화, 환경운동 등을 추구하는 그룹들이 결성되기 시작했다. 1983년 5월 서독 녹색당의 대표적 정치인인 페트라 켈리가 동베를린을 방문해 동독 환경운동가들을 만난 것을 계기로 동독에서도 녹색당 창당 논의가 시작됐다. 동독 환경운동가들은 1984년 11월 소련이 신형 핵미사일을 개발해 실전에 배치할 때 이에 격렬히 항의했다. 1986년 4월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핵발전소 폭발 사고 이후엔 전국적 차원에서 핵발전소 반대운동을 조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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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독일 녹색당은 사실 두개의 녹색당이 하나가 된 것이다. 글을 작성하면서 점검하는 과정에서 함께하는 팀원들이 내 글에서 구 동독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는 말을 들었는데, 기분 나쁘지 않은 말이었다.

구 동독 배경을 가진 청년들(부모세대가 DDR을 경험했거나, 그들의 어린 시절 DDR을 경험한)의 정치적 태도에 관해 지난 3년 동안 연구하면서, 연구보다는 여러 사람들을 만났다. 네오나치 그룹에서 활동하다가 탈퇴해서 극우 반대 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도 했고, 기민당을 지지하는 부모와는 다르게 녹색당에서 활동하는 친구들을 만나기도 했다.

“구 동독 지역에 극우 정당(AfD) 지지자들이 많이 살고 있다”는 클리셰를 깨고 싶어서 시작했던 연구였는데, 그럴싸한 결과는 내지 못하고 접었다. 사실 극우 현상은 구 동독 뿐만 아니라 독일 전역에 걸친 현상이고, 이 문제를 대하는 태도가 아직까지 독일 사회에 여전한 구 동독을 차별하는 구서독 중심의 사고라고 풀이하고 싶었다. 독일의 여러 사회문제(제노포비아, 인종 및 외국인 차별, 이민자 통합 문제, 반유대주의 등)는 비단 동독의 문제만이 아니니까.

구 동독 지역에서 녹색당의 선전이 구 서독지역 만큼 크지 않은 것은, 동서독 분단 40년 동안 정당 민주주의 체제가 아니었고, 통독 이후에는 자칭 구 동독의 이익을 대변하는 좌파당(당시 민사당)이 있었다. 그런 배경에서 지난 30년 동안 동독 녹색당의 활동과 의회 진출은 의미있고, 전망이 밝다.

*기사 읽기: 통일 후 30년, ‘기후위기’로 뭉친 독일 녹색당(시사인 제724호)